한국불교태고종 원로대덕들은 '짧게 물러서고 길게 이기는' 큰 길을 택했다. 인욕(忍辱) 바라밀을 수지함으로 종단과 반개혁측, 나아가서는 한국불교 전체가 함께 사는 대승적 길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종단은 이 모든 것에 불구하고 개혁의지는 더욱 다져나가기로 다짐했다. 한국불교태고종(총무원장 운산스님)은 지난 9월 4, 5일 양일간 전남 순천시내 모처에서 종단 원로중진간부 연석회의를 열고, 선암사 일부 재적승들이 종단의 개혁방안에 반발해 종단의 합동득도 수계법회를 거부하고 선암사의 수행과 교화 및 운영을 파행으로 몰고 간 일련의 사태에서 비롯된 '선암사 사태'를 원만해결할 것을 결의했다. 연석회의는 이날 애종심을 바탕한 열띤 논의 끝에 9월 5일 오후 2시부터 실시할 예정이었던 제30기 합동득도 수계법회를 잠정 연기하는 한편, 선암사 사태를 물리적 대결이 아닌 대화를 통해 원만히 수습해 나가기로 결의했다. 승정원장 남파스님, 원로 헤종스님 등 원로스님들과, 중앙종회의장 인공스님, 중앙사정원장 월운스님 등 3부 기관장과, 제주종무원장 상허스님, 충북종무원장 월담스님, 경남종무원장 월봉스님 등 교구 종무원장 중진 간부 스님 등 9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틀간의 마라톤회의는 이같은 결정과 함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종단 개혁의지를 더욱 분명히 해 나갈 것을 천명했다. 이날 회의에서 총무원은 선암사 일부 재적승들의 발목잡기에도 불구하고 종단 정례행사인 수계법회를 예정대로 봉행할 것인지, 아니면 정면충돌로 야기될 종단및 불교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방지키 위해 법회를 잠정 연기할 것인지를 두고 원로중진들의 총의를 모은 결과,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합동득도 수계법회의 연기가 종단 행정의 일관성에 관한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선암사의 대승적 미래를 위한 개혁불사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종단의 포용성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이날 연석회의는 종단 원로와 3부 기관장 및 교구 종무원장 연명으로 종단과 선암사의 중단없는 개혁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채택하고 폐회했다. 이로써 선암사 일부 무자격 재적승들이 내세운 "총무원에서 이번 행사를 강행하고 선암사를 물리력으로 점령하기 위해 500여명이 승려를 동원했다", "산문 정면으로는 들어올 수 없으나 송광사에서 산을 넘어 온다"는 주장 등은 터무니없는 거짓으로 판명된 셈이다. 또 지금까지 양창기(전 법명 도월)등의 일방적 주장에 근거한 탓에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관계기관과 언론 및 사회시민단체에서도 선암사 문제를 올바로 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석회의를 통해 선암사 및 합동득도 수계문제를 풀어가는 종단의 합리적이고도 불교적인 해결방식에 대해 교계 안팎에서도 아주 긍정적인 반응들을 보이고 있다. 타 종단의 한 중진스님은 "태고종은 이번 결단을 통해 한 발 물러섬으로써 모두를 끌어안은 성숙함을 보였다"며 "향후 승속을 불문한 모든 갈등 국면에 훌륭한 귀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총무원은 연석회의가 끝난 뒤 곧바로 종무회의를 열고, 수계의식에 참석할 행자와 은사스님들에게 긴급연락을 취해 수계산림의 잠정연기를 통보했다. 총무원은 모든 역량을 모아 조속한 시일 내에 수계법회를 재개할 계획이다. 돌아보면, 이번 선암사 문제는 선암사 일부 재적승들이 원통보전 관세음보살상이 가짜라는 주장을 하다가 여러 공인기관의 검증결과, 이같은 주장이 거짓임이 드러나자,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수계의식을 발목잡음으로써 종단의 개혁의지를 희석시키고자 획책한 것으로 보인다. 종단의 미래를 준비하는 합동득도 수계는 82년도 첫 합동수계 이래 한차례도 중단없이 이뤄져 왔다.금번 회의에 동참한 중진 간부스님들은 "네 스스로 선암사의 재적승이 아니지만 선암사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었는데, 사찰의 행사가 아닌 종단의 미래와 결부된 교육과 수계불사를 거부한 것은 어떤 설명으로도 명분을 찾을 수 없는 해종행위가 분명하다"며 "종단 집행부에서는 혹여라도 이번의 연기가 개혁의 중단이나 망설임으로 비쳐지는 일이 없도록 더욱 강한 의지를 보일 것을 비분한 충정으로 건의한다"고 말했다. 총무원장 이운산 스님과 부원장 윤자월 스님은 이날 회의에 앞선 모두발언과 마무리 발언에서 종단 개혁과 선암사 정상화를 위한 결의와 심정을 설명하면서, 잠시 말을 잇지 못해 장내가 숙연해지기도 했다.
